대통령과 대법원장, 서로에게 말하지 말고 국민에게 설명하라
대법관 제청권·임명권 정면충돌…헌법은 어느 한 기관의 소유물이 아니다
사법부 독립도 대통령 임명권도 존중돼야…200일 넘은 대법관 공석의 비용은 국민에게
헌법해석을 여론으로 결정할 순 없어…그러나 권한행사의 이유와 해결책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국뉴스투데이24=이상록 논설위원]
대법관 한 사람의 임명을 놓고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정면으로 마주 섰다.
청와대는 지난 8월 28일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했다. 청와대는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실질적 임명권을 대체하거나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조 대법원장은 9월 22일 재제청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제청 요청 문서에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고, 달리 이를 정당화할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헌법 제82조의 대통령 국법상 행위에 관한 문서·부서 문제도 거론했다.
청와대는 즉각 반박했다. 대법원장의 입장은 제청권을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놓아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인식이라는 주장이다.
양쪽 모두 헌법을 말한다.
양쪽 모두 자신의 권한을 지키는 것이 헌법질서를 지키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제 한 가지 질문을 더 해야 한다.
두 헌법기관은 지금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가.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해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상황을 바라보는 국민에게 자신의 판단을 이해시키기 위해 말하고 있는가.
헌법은 권한을 일부러 나눠 놓았다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짧은 문장이지만 세 개의 권한이 들어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
국회의 동의권.
대통령의 임명권.
어느 한 기관도 혼자 대법관을 결정할 수 없다.
대법원장이 제청했다고 곧바로 대법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을 혼자 선택해 임명하는 구조도 아니다. 국회 역시 스스로 후보자를 정해 임명할 수 없다.
법원조직법도 같은 구조를 두면서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제청할 대법관의 3배수 이상을 추천하고 대법원장은 그 추천 내용을 존중하도록 한다. 추천이 끝나면 해당 추천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
헌법과 법률은 권한을 나눴다.
그렇다면 이번 문제를 단순히 ‘제청권이 우위인가, 임명권이 우위인가’라는 승패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 과연 헌법의 취지에 맞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대법원장의 질문에는 이유가 있다
대법원장의 문제제기를 가볍게 볼 수 없다.
대통령이 이미 제청된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후보자를 다시 제청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면 그 권한의 범위와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만약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있는 후보가 나올 때까지 아무런 제한 없이 재제청을 반복해서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부여한 헌법의 의미가 약해질 수 있다.
더 나아가 행정부가 대법관 후보자의 선택 과정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된다면 사법부 독립이라는 또 다른 헌법적 가치와 긴장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조 대법원장이 던지는 질문에는 답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이미 이루어진 제청을 되돌려 다른 후보를 제청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면 그 헌법적 근거와 한계는 무엇인가.
현행 헌법과 법원조직법에는 지금 벌어진 상황에서의 재제청 요구와 그 이후의 절차를 직접 정한 명문 규정을 찾기 어렵다. 법원조직법은 오히려 추천위원회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추천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재제청을 인정하더라도 기존 추천후보 가운데 다시 선택해야 하는지, 추천위원회부터 새로 구성해야 하는지 등의 후속절차가 명확하지 않은 이유다.
대통령의 질문에도 이유가 있다
그러나 청와대가 제기하는 질문 역시 피할 수 없다.
대법원장이 한 사람을 제청하는 순간 대통령에게 아무런 실질적인 판단의 여지도 남지 않는다면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임명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청와대는 대통령이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자이고, 제청권은 대통령의 임명권을 대체하거나 무력화하는 권한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번 재제청 요구 역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헌법기관 사이의 상호견제를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이 역시 단순히 무시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다.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주면서 대통령에게 별도로 임명권을 부여한 이상 두 권한이 각각 어떤 실질적 의미를 갖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결국 어느 한쪽의 권한을 사실상 없애는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제대로 풀기 어렵다.
제청권을 지나치게 약하게 만들면 사법부 독립과 충돌할 수 있고, 임명권을 완전히 형식적인 절차로 해석하면 대통령에게 별도의 권한을 부여한 헌법의 의미를 설명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런데 국회는 어디에 있는가
이번 갈등을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문제로만 보면 한 기관을 놓치게 된다.
국회다.
헌법은 대법관 임명에 국회의 동의를 요구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으면 국회는 그 후보자에 대해 동의할 것인지, 동의하지 않을 것인지를 심사할 기회 자체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헌법적 질문이 생긴다.
제청권과 임명권의 충돌 때문에 국회의 동의권은 어디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는가.
헌법이 세 기관에 나누어 놓은 권한 가운데 두 기관의 충돌로 세 번째 기관의 판단기회까지 장기간 정지된다면 그 문제 역시 살펴봐야 한다.
헌법적 가치가 충돌할 때 국민을 보라
이번 사태에는 여러 헌법적 가치가 동시에 등장한다.
사법부의 독립.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상 임명권.
국회의 동의권.
국민주권.
그리고 국민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다.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자리는 이미 200일 넘게 공석이다.
청와대는 대법관 한 명이 연간 3천500~4천600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상황에서 공석이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에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이 수치는 청와대 측이 제시한 근거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지금의 충돌은 대통령과 대법원장 두 사람의 권한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헌법기관 사이의 충돌비용을 결국 누가 부담하는가.
국민이다.
국민의 뜻을 묻는다는 것은 헌법을 인기투표에 맡기자는 뜻이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선을 하나 그어야 한다.
헌법 문제를 여론조사로 결정할 수는 없다.
대통령의 헌법해석과 대법원장의 헌법해석 가운데 어느 것이 법적으로 옳은지를 국민 인기투표로 정해서도 안 된다.
권한쟁의나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면 헌법이 마련한 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에게 묻는다는 것은 그것과 다른 의미다.
대한민국 헌법의 출발점은 국민주권이다.
국가기관이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한다면, 왜 그 권한을 그렇게 해석하고 행사하는지를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도 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왜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는 것이 대통령에게 부여된 임명권의 올바른 행사라고 판단했는가.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이라는 문제제기를 넘어, 후보를 국회의 판단에 넘기지 않을 정도의 기준이 무엇인지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장 역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왜 재제청 요구에 응하는 것이 제청권과 사법부 독립에 문제가 된다고 판단하는가.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결론만이 아니라 어떤 헌법적 원리와 제청권의 의미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지를 국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헌법기관의 권한은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특권이 아니다.
상대에게 보내는 문서보다 국민에게 보내는 설명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양측의 언어는 주로 상대방을 향했다.
대법원장은 재제청 요구의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청와대는 대법원장의 입장이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이라고 반박했다.
정치권에서는 대법원장 사퇴 요구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언어가 강해질수록 국민은 두 헌법기관이 헌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을 무기로 서로 싸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이제 언어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상대에게
“당신의 헌법해석이 틀렸다.”
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국민에게
“우리는 이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판단했다.”
고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지키려는 권한뿐 아니라 상대 기관이 지키려는 헌법적 가치가 무엇인지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을 놓고 싸우기 전에 기준을 공개하라
갈등의 간격을 줄이는 방법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손봉기라는 특정 후보자를 중심으로 계속 충돌하면 문제는 사람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좁아진다.
한 단계 위로 올라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대법관에게 필요한 기준은 무엇인가.
법률적 전문성과 재판경력인가.
기본권과 소수자 보호에 대한 인식인가.
대법원 구성의 다양성인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인가.
사회적 신뢰인가.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이 기준에 서로 다른 무게를 둘 수 있다.
그렇다면 각각 무엇을 기준으로 후보자를 판단했는지부터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준을 먼저 밝히면 특정 후보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도 훨씬 투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만나야 한다
설명이 끝났다면 다음은 협의다.
협의는 굴복이 아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존중한다고 임명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문제제기를 다시 듣는다고 사법부 독립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양측이 각자의 헌법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어떤 부분에서는 상대의 권한을 인정할 수 있는지 다시 협의할 수 있다.
사전협의 관행이 헌법이나 법률 자체는 아니다. 그렇다고 최고 헌법기관 사이의 충돌을 예방해온 협의의 기능까지 부정할 필요도 없다.
협의로 해결하기 어렵다면 권한쟁의 등 헌법상 제도적 절차를 통해 권한의 경계를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헌법재판소의 역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공석의 장기화 자체가 해결방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에 제도적 빈칸도 메워야 한다
이번 사태가 해결된 뒤에는 국회가 검토해야 할 문제도 있다.
현재 헌법과 법원조직법은 대법원장의 제청,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이라는 기본구조와 후보추천 절차는 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청된 후보를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어떻게 충돌을 해소할 것인지에 관한 구체적인 후속절차는 명확하지 않다.
대통령이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어떤 사유와 절차가 필요한가.
몇 차례까지 가능한가.
대통령은 제청을 받은 뒤 언제까지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제출해야 하는가.
재제청이 필요하다면 기존 추천후보 가운데 다시 선택하는가.
아니면 이미 해산된 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구성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가 명확하지 않으니 기존의 협의관행이 깨지는 순간 헌법기관의 충돌이 장기적인 제도적 교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일을 한 차례의 정치적 승패로 끝내서는 안 된다.
다음 대통령과 다음 대법원장이 같은 문제로 다시 충돌하지 않도록 필요한 절차를 정비하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국민이 묻는 세 가지 질문
이번 갈등을 풀기 위해 세 기관에 각각 국민 앞에서 답해달라고 묻고 싶다.
대통령에게 묻는다.
왜 손봉기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는 것이 대통령에게 부여된 임명권의 올바른 행사인가. 그 판단기준과 재제청 요구의 한계는 무엇인가.
대법원장에게 묻는다.
왜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에 응하는 것이 대법원장의 제청권 또는 사법부 독립과 충돌한다고 보는가. 그렇다면 200일 넘게 이어진 공석을 해소할 대안은 무엇인가.
국회와 정치권에 묻는다.
두 헌법기관의 충돌을 정쟁으로 확대하는 것 외에, 앞으로 같은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해결할 절차를 어떤 법률과 제도로 마련할 것인가.
국민에게 답한다는 것은 국민에게 법률판단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국가기관의 권한행사를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사실과 이유, 그리고 해결방안을 공개하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