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 주택 공급 논쟁…‘집이냐 공원이냐’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
청년의 주거시간도, 도시 녹지의 시간도 되돌리기 어려워…‘빠른 공급’은 실제 얼마나 빠른가
지난 8월, 국토교통부 장관과 서울시장이 두 차례 마주 앉았다. 첨예한 쟁점은 용산공원이었다.
정부는 이미 건물이 있거나 훼손된 일부 부지를 활용해 청년과 신혼부부 등을 위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서울시는 용산공원 본체 부지만큼은 주거용으로 전환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논의가 관련 특별법 개정 문제로까지 이어지면서 더 큰 질문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행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은 국가가 본체부지 전체를 용산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주택 공급 논의는 결국 이 원칙을 어디까지 유지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논쟁은 흔히 ‘주택이냐, 공원이냐’라는 이분법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문제를 그렇게 단순화하는 순간 정작 우리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 하나를 놓치게 된다.
지금 우리의 결정 가운데 무엇은 다시 되돌릴 수 있고, 무엇은 되돌리기 어려운가.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높은 주거비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과 신혼부부의 주거 문제는 먼 미래로 미룰 수 없는 현실이다. 국토부는 공원 전체가 아니라 대사관 숙소 부지 등 이미 반환된 일부 훼손지를 활용하는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의 논리도 명확하다.
한 번 공원 부지를 주거용지로 내어주기 시작하면 하나의 선례가 되고, 이후 다른 개발 요구를 막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공원 부지가 주거용지로 전환돼 건축물과 기반시설이 들어선 뒤 이를 다시 연속된 공원과 녹지로 되돌리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서울시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식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3.9%가 용산공원 내 공공주택 공급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도시의 녹지에는 ‘시간’이 쌓인다
도시의 녹지를 설계하고 가꿔온 입장에서 개발과 보존의 문제를 바라볼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는 ‘시간’이다.
건물은 필요하면 철거할 수 있고 작은 화단은 다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자란 나무와 녹지가 함께 만들어낸 생태적 공간은 다르다.
나무를 없애는 데 걸리는 시간에 비해 다시 그만한 나무가 자라 그늘과 생물의 서식처를 만들기까지는 수십 년이 필요하다.
녹지 역시 단순히 면적만 확보한다고 같은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무와 흙, 주변 녹지가 서로 연결되고 시간이 쌓이면서 그 공간만의 기능이 만들어진다.
한 번 끊어진 생태적 연결성을 도면 위에 같은 크기의 초록색 면적으로 다시 표시한다고 해서 곧바로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다.
한국조경학회는 2026년 8월 24일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 20주년을 맞아 용산공원의 온전한 완성을 촉구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학회는 역사성, 생태·기후적 가치, 사회적 합의, 사업 현실성, 공급 효과 등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용산공원 내 주택 공급에 반대했다.
배정한 학회장은 이 부지를 미래 세대에게 남겨야 할 생태·기후 인프라라는 취지로 강조했다.
오염된 땅이라면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하다
환경단체의 우려는 오염 문제에 더욱 구체적으로 향한다.
녹색연합은 정부가 반환협상 과정에서 실시한 환경조사 자료를 근거로, 과거 학교·숙소 부지에서 비소가 관련 기준의 약 40배, 다이옥신이 약 35배, 석유계총탄화수소가 23배 넘게 검출된 사례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
따라서 주택 공급 여부와 별개로 오염의 범위와 정도, 정화방법과 소요기간 등을 충분히 공개하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특정 부지에서 과거 확인된 오염수치를 용산공원 전체의 현재 오염상태로 확대해 해석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이 장기간 생활할 주거공간을 검토한다면 토양과 환경의 안전성을 충분히 확인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가 돼야 한다.
청년에게도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 있다
그렇다고 주택을 기다리는 청년들의 시간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주거 불안 속에서 미뤄지는 결혼과 출산, 독립과 삶의 계획 역시 되돌려받기 어려운 시간이다.
높은 전셋값과 월세, 대출 부담에 눌려 오늘의 선택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몇 년의 기다림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래서 용산공원 논쟁이 어려운 이유는 양쪽 모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가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빠른 주택 공급’은 실제 얼마나 빠른가
가까운 사례가 캠프킴이다.
2020년 주택 공급 후보지로 발표된 캠프킴은 반환 이후 6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토양오염 정화와 문화재 조사 등의 절차로 아직 본격적인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다.
용산공원 본체 역시 미반환 구역이 남아 있고 오염 조사와 정화, 관계기관 협의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토지의 용도를 주거로 바꾸는 결정만 내린다고 곧바로 주택 공급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되돌리기 어려운 가치를 먼저 내어주면서까지 확보하려는 시간이 실제로 얼마나 빠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택 공급이 절실할수록 해법은 오히려 더 신중해야 한다.
수십 년 이상 도시의 공간구조에 영향을 미칠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다른 대체부지나 공급방식을 통해 더 신속한 해법을 찾을 수 없는지 철저히 비교해야 한다.
최근 서울시는 탄천물재생센터 이전 부지 등 대안을 제시했고, 정치권에서도 여론조사와 공론화위원회 등 숙의절차가 거론되고 있다.
이런 과정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일수록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것이 오히려 더 필요한 절차일 수 있다.
무엇을 미래 세대에게 남길 것인가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낼 때조차 충분한 진단과 질문이 필요하다.
하물며 수도 서울 한복판의 거대한 공간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를 결정하는 일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가치를 서둘러 포기하는 조급함이 아니다.
공원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접점을 끝까지 찾아내는 일이다.
주택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공원이 소중하다는 사실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우리가 내려야 할 결정은 단순히 ‘집이냐, 공원이냐’의 선택이 아니다.
무엇을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만들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 미래 세대 앞에서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답이어야 한다.
다음 편 — 초록도 공평하지 않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어떤 동네는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공원과 녹지가 있지만, 어떤 동네는 집 가까이에서 그늘을 찾기조차 어렵다.
우리가 흔히 소득과 주거에서 이야기해 온 격차가 녹지와 환경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음 글에서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