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투데이24=한아람 논설위원)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한 은행나무가 이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령 100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진 오랜 나무였다. 5월 들어 잎이 누렇게 마르고 비정상적으로 떨어지자 이를 수상히 여긴 주민들이 인근 CCTV를 확인했다. 화면에는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이 나무 밑동에 전동 드릴로 구멍을 뚫고 제초제로 추정되는 액체를 주입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나무 바로 옆에는 환기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화백의 호는 '수화(樹話)', 즉 '나무와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미술관 측은 나무뿌리가 담장 아래로 뻗어 균열을 일으키고 붕괴 위험이 있어, 관계 기관과 토지 소유주에게 문제를 알린 것이라 해명했다.
물론 안전은 무엇과도 타협할 수 없이 중요하다. 나무뿌리가 구조물에 영향을 주어 실제 위험으로 이어진다면 마땅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사건이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이유는, 나무와 담장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순서'로 해법을 찾았는가 하는 점에 있다.
백 년 넘게 살아온 생명을 지우는 결정이라면, 그전에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치열하게 물었어야 했다. 뿌리의 생장을 조절하거나 담장 구조물을 보강할 방법은 없었는지, 나무를 살리면서도 안전을 확보할 길은 없었는지 살피는 것이 먼저다. 나무를 없애는 극단적인 선택은 다른 모든 가능성을 소진한 뒤에 내려도 결코 늦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비단 부암동 담장 밑에서만 벌어지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지난 5월 서울시 시민감사 옴부즈만위원회는 마포구의 가로수 관리 실태를 지적했다. 도시숲 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와 다르게 일부 나무가 제거되거나 무단 벌목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후 해당 지역에는 민간 사업자가 기부한 소나무가 심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기부금품 심사와 접수 절차 역시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 사건의 맥락은 다르지만,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나무 한 그루를 없애는 결정은 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내리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무와 호흡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되는가."
도시 한구석에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는 참으로 많은 것을 살핀다. 토양 상태와 배수, 일조량, 주변 구조물과의 거리는 물론, 수종의 특성과 향후 생장 규모까지 꼼꼼히 따진다. 심은 뒤에도 뿌리가 안착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그런데 그토록 오랜 시간 자라난 나무를 없애는 순간에는 이상하리만치 질문이 사라진다. 정말 제거 외에는 방법이 없는지, 이 나무가 수십 년간 드리워온 그늘과 경관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작은 생명들에게 어떤 품을 내어주었는지 묻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나무를 매일 바라보며 살아온 동네 주민들의 생각은 너무나 쉽게 뒷전으로 밀려난다. 나무를 심을 때는 깐깐하게 미래를 따지면서, 정작 없앨 때는 그 나무가 견뎌온 과거의 시간을 전혀 예우하지 않는 셈이다.
물론 도시의 모든 나무를 무조건 안고 가야 한다는 맹목적인 주장이 아니다. 속이 썩어 쓰러질 위험이 있거나 시민의 안전을 직접 위협한다면 당연히 베어내야 한다. 핵심은 '안전'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 고민의 스위치를 꺼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말 위험한가. 다른 대안은 없는가. 제거가 최선이 아니라 '최후'의 선택인가. 이 질문들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동네의 오래된 나무는 수십 년, 때로는 백 년의 시간을 한자리에서 버텨낸 생명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고, 누군가에게는 고단한 퇴근길의 위로이며, 펄펄 끓는 한여름 잠시 숨을 고르던 서늘한 그늘이다. 그래서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잘려 나가는 것은 단순히 통계표 위 녹지 면적 몇 제곱미터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나무테에 새겨진 동네의 시간과 주민들의 기억이 함께 사라지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장 우리 주변의 나무들에 시선을 두는 것부터 시작하자. 우리 동네 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지, 개발과 정비사업 앞에서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묻고 지켜봐야 한다. 이번 부암동 사건은 제도의 테두리 밖에 놓인 수많은 '평범한 고목'들을 누가, 어떻게 지킬 것인지 뼈아프게 묻고 있다.
보호 가치가 있는 나무를 선제적으로 조사해 기록하고, 제거 전 반드시 전문가의 객관적 진단을 거치며, 그 사유를 주민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적어도 수십 년을 살아온 생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 소수의 판단만으로 조용히 처리되게 두어선 안 된다.
개발과 편의의 논리 앞에서 나무는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자신이 품어온 그늘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항변할 수도, 베지 말아 달라고 애원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무가 사라지는 과정은 대개 조용하다. 어제까지 잎을 피우던 나무가 하루아침에 밑동만 남은 채 잘려 나가고, 우리는 한참 뒤에야 그 빈자리를 발견한다.
지난 편에서 나는 기후위기가 먼 나라의 뉴스가 아니라 당장 내가 걷는 동네의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올여름 온열질환으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곁에 그늘이 없었던 것처럼,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는 누군가의 생명줄이다. 폭염이 일상이 된 시대, 도시의 나무와 그늘은 곧 생존의 인프라다.
하지만 그 그늘은 결코 저절로 지켜지지 않는다. 누군가 나무를 베어내려 할 때, 왜 그래야만 하는지 따져 묻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행정과 전문가의 책무이기도 하지만, 그 나무의 그늘 아래서 땀을 식히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당신의 동네, 그 오래된 나무는 지금 안녕한가. 그리고 그 나무가 베어지기로 결정되던 그 순간,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다음 편
다음 편에서는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용산공원 주택공급 논쟁을 들여다보려 한다. 청년 주거를 위한 공급이라는 절박함과, 한 번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는 도심 거대 녹지의 가치. 이 충돌하는 두 가지 과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이야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