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투데이24= 한아람 논설위원)

같은 서울에 살고 있어도 누구는 집을 나서 몇 분만 걸으면 공원과 산책로를 만난다.

창문을 열면 나무가 보이고, 한여름에도 그늘을 따라 걸을 수 있다. 반면 어떤 동네에서는 공원을 찾아 한참을 걸어야 하고, 여름철 보행로에는 햇빛을 피할 만한 나무 한 그루조차 드문 경우가 있다.

이것은 막연한 인상만은 아니다.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서울사무소가 올해 6월 지리정보시스템(GIS)과 위성자료 등을 활용해 서울 25개 자치구의 녹지 면적과 접근성을 분석한 결과, 자치구별 1인당 녹지면적 격차는 최대 20배에 달했다.

집 주변 300m 안에 녹지가 없는 서울 시민은 약 24만5천명으로 분석됐고, 기준을 100m로 좁히면 녹지에서 소외되는 인구는 약 420만명으로 늘어났다.

녹지와 도시의 열 사이에도 차이가 나타났다.

그린피스가 2024년 6월 18일과 8월 29일 위성자료를 분석한 결과, 녹지 면적이 가장 적은 동대문구의 지표면 온도는 각각 43.0℃와 42.7℃, 녹지가 가장 많은 서초구는 37.8℃와 38.1℃였다. 조사일에 따라 약 4.6~5.2℃의 차이가 난 셈이다.

다만 이는 특정 날짜에 위성으로 관측한 지표면 온도를 비교한 결과로, 일상적으로 측정하는 기온의 차이와 같은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흔히 주거 격차와 소득 격차, 교육 격차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도시의 초록에도 격차가 있다.

문제는 단순히 어느 자치구에 공원이 몇 개 있느냐가 아니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공원이 있는지, 그 공원이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인지, 길을 걷는 동안 충분한 가로수와 그늘을 만날 수 있는지까지 함께 봐야 한다.

큰 산이나 대형 공원이 행정구역 안에 포함돼 있다고 해서 모든 주민이 일상에서 충분한 녹지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녹지는 면적만큼이나 ‘접근성’이 중요하다.

같은 면적의 녹지라도 사람들에게 주는 가치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도시 외곽의 넓은 녹지와 집 앞 작은 공원은 역할이 다르다.

주말에 시간을 내 찾아가는 대형 공원도 필요하지만, 어린아이가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고 노인이 매일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작은 녹지도 중요하다.

특히 활동 반경이 좁은 사람들에게 집 가까운 녹지는 단순한 편의시설이 아니라 일상의 질을 결정하는 공간이 된다.

한국조경학회지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이 500m 거리를 걷는 데 걸리는 시간은 청장년층보다 약 1.7배 더 길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근린공원 유치거리 기준인 500m를 노인 기준으로 다시 적용하면, 실질적으로는 300m 안에 공원이 있어야 노인들이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가까운 곳에 공원과 녹지가 부족한 동네에 사는 사람일수록, 특히 노약자일수록 그 부족함을 몇 배는 더 크게 체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녹지의 격차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무거운 문제가 된다.

나무와 공원은 단순히 보기 좋은 풍경을 만드는 시설이 아니다.

여름철 그늘을 만들고, 뜨거워진 도시의 열을 완화하며, 시민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렇다면 그늘이 부족한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은 같은 폭염을 조금 더 힘들게 견뎌야 한다.

가로수가 풍성한 길을 걷는 사람과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뿐인 길을 걷는 사람이 한여름에 경험하는 도시는 같지 않다.

가까운 곳에 공원이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경험하는 자연도 다르다.

초록의 격차는 결국 건강과 휴식, 이동의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도시 녹지를 이야기할 때 전체 면적을 얼마나 늘렸는지만으로 성과를 평가해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그 초록이 어디에 만들어졌고, 누가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도시에 새로운 공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땅값이 비싸고 이미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지역에서는 대규모 녹지를 확보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하지만 꼭 거대한 공원만이 답은 아니다.

학교 주변과 공공시설의 유휴공간, 도로변과 작은 공터, 주택가와 골목 등 생활 가까운 곳에도 녹지를 늘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단절된 녹지를 가로수와 작은 정원으로 연결하고 걷는 길 자체를 하나의 녹지축으로 만들어가는 방법도 있다.

서울시도 ‘5분 정원도시’를 내걸고 생활밀착형 공원과 매력가든·동행가든, 일상 속 힐링정원 등을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시민의 일상에서 가까운 정원을 늘리는 것을 2026년 정원도시 정책의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서울시는 앞서 도로변과 공원, 하천, 산림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매력가든·동행가든 1,010곳, 약 68만㎡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정책의 숫자만큼 중요한 것은 그 정원이 어디에 만들어지는가다.

멋진 공원 하나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매일 다니는 길에 나무 한 그루를 더 심고, 잠시 머물 수 있는 작은 그늘을 만드는 일이다.

도시 전체를 멀리서 바라보면 아주 작은 공간일지 몰라도, 그곳을 매일 지나는 사람에게는 가장 자주 만나는 자연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공원을 도시의 여유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개발하고 남은 땅에 조성하는 공간, 여건이 될 때 만들 수 있는 시설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의 녹지는 여유가 아니라 기반시설에 가깝다.

도로와 학교, 병원이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지나치게 차이나서는 안 되는 것처럼, 나무와 그늘과 가까운 공원 역시 일부 지역만 누리는 혜택이어서는 안 된다.

도시에서 초록을 누릴 수 있는 기회까지 경제적 여건이나 거주 지역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면, 그것은 단순한 녹지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가 누구에게 얼마나 공평한가의 문제다.

우리가 지켜내고 새롭게 만드는 초록은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는가.

도시의 나무와 공원이 모두의 것이라면, 그 혜택 역시 모두에게 조금 더 공평하게 닿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