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집중호우가 바꾼 일상…나무 한 그루와 작은 녹지가 도시의 안전망이 되는 이유
(한국뉴스투데이24=한아람 논설위원)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흔히 북극의 녹아내리는 빙하나 대형 산불, 기록적인 홍수 같은 먼 곳의 풍경을 떠올린다. 뉴스 화면 속 반복되는 재난은 분명 심각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내 일상과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동네의 풍경과 누군가의 생명을 바꾸고 있다.
잠시 걷기조차 숨 막히는 아스팔트, 길어진 폭염과 열대야, 갑작스러운 집중호우, 계절의 경계가 흐려지는 자연의 변화까지.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가는 거리와 공원, 하천 곳곳에서 기후의 변화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행정안전부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2016~2025년) 연평균 폭염일수는 18.3일로, 1973~1982년의 8.3일보다 약 2.2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열대야일수도 4.1일에서 12.2일로 약 3배가 됐다.
이 변화는 통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2026년 8월 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온열질환 사망자 23명 가운데 65세 이상은 19명으로 82.6%를 차지했다. 논밭 등 농촌지역에서 7명, 실내·외 작업장에서 6명이 숨졌다.
폭염 속에서 그늘과 쉼터를 얼마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가는 이제 도시의 편의를 넘어 안전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나는 오랜 시간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해왔다. 도시 곳곳의 녹지를 설계하고 돌보며 자연이 보내는 신호를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봐 왔다.
폭염에 시들어가는 나무, 폭우에 뿌리째 흔들리는 식물을 마주할 때마다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이게 정말 ‘이상 기후’ 한 번의 사건일까. 아니면 이미 새로운 계절의 질서가 된 걸까.
그래서 나는 기후위기를 이야기할 때 거대한 지구적 담론에 앞서 ‘우리 동네’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지나는 가로수와 띠녹지는 단순한 미관용 장식이 아니다.
나무는 뜨거운 햇볕을 가리고 그늘을 만든다. 작은 생명체에는 보금자리가 되고, 사람에게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동네의 작은 공원과 녹지 역시 시민들의 쉼터이면서 그늘을 만들고 도시의 열환경을 완화하는 공간이다.
하천과 습지, 콘크리트로 덮이지 않은 흙의 공간도 중요하다. 폭우가 쏟아질 때 빗물을 머금고 흘려보내는 시간을 늦춰 집중호우에 대응하는 도시의 완충공간이 된다.
우리가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는 나무와 흙, 물길과 작은 녹지가 기후위기의 순간에는 도시를 지키는 기반시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거창한 구호에만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 나무가 얼마나 살아 있는지, 아이들의 등하굣길과 어르신들이 자주 걷는 길에 충분한 그늘이 있는지, 작은 녹지가 개발과정에서 너무 쉽게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데서도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환경보호를 개인이 해야 할 ‘소소한 실천’과 국가가 해야 할 ‘거대한 정책’으로 나누어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그사이에는 우리가 매일 발 딛고 살아가는 ‘동네’가 있다.
동네는 국가정책이 실제 삶과 만나는 공간이고, 개인의 작은 선택이 이웃의 삶과 연결되는 공간이다.
나무 한 그루의 안부를 묻고 가까운 공원과 하천의 변화를 눈여겨보는 것, 개발의 편리함만큼 자연과의 공존에도 가치를 두는 것. 이런 관심이 쌓일 때 우리 도시는 기후변화에 조금 더 견딜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물론 나무 몇 그루를 더 심는다고 기후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전환, 산업구조 변화와 같은 국가적·국제적 대응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거대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작은 변화를 중요하지 않게 만들지는 않는다.
기후위기는 남의 나라 뉴스가 아니다.
오늘 내가 걷는 길의 온도이고, 집 앞에서 마주치는 나무의 모습이며,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받아내는 우리 동네의 이야기다.
그래서 환경을 향한 변화 역시 먼 곳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매일 숨 쉬며 살아가는 바로 이곳에서도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 동네의 개발계획을 바라볼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는지만 보고 있는가.
아니면 그곳에 얼마나 많은 그늘과 흙, 물길과 생명이 남는지도 함께 보고 있는가.
기후위기 시대에 좋은 동네의 기준은 어쩌면 여기에서부터 다시 물어야 할지 모른다.
다음 편
다음 편에서는 우리를 숨 쉬게 하던 ‘동네의 그늘’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 소중한 그늘이 효율과 개발의 논리 앞에서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동네의 빈자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