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뉴스투데이24=한아람 논설위원) 개발 현장을 지나다 보면 묘한 장면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수십 년을 살아온 큰 나무가 베어지고, 공사가 끝난 자리에는 어린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심겨 있다. 사업 설명서에는 녹지 면적이 확보됐고, 수목도 새로 식재됐다고 적힌다. 숫자만 놓고 보면 이전보다 나무가 더 많아진 경우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같은 녹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50년을 살아온 큰 나무 한 그루를 없애고 어린 나무 열 그루를 심었다면, 우리는 나무 아홉 그루를 더 얻은 것일까.
조경 일을 오래 하면서 나는 이 질문을 자주 떠올렸다.
현장에서 나무는 흔히 수량으로 기록된다. 교목 몇 주, 관목 몇 주, 식재 면적 몇 제곱미터와 같은 방식이다. 설계도면과 공사 내역을 만들려면 당연히 필요한 기준이다.
하지만 나무의 가치는 숫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충분히 자란 큰 나무와 이제 막 심은 어린 나무의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수관’에서 나타난다. 수관은 가지와 잎이 펼쳐져 있는 나무의 윗부분이다. 우리가 한여름에 나무 아래에서 만나는 그늘도 이 수관이 만들어낸다.
큰 나무 한 그루는 넓은 수관으로 햇빛을 가리고, 잎의 증산작용을 통해 주변 열환경을 완화한다. 도시 나무의 냉각 효과를 종합한 미국 산림청의 2025년 연구도 수관이 넓고 밀도 높은 나무일수록 도시의 열을 낮추는 데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새로 심은 어린 나무는 아직 그늘을 만들 만큼 수관이 충분히 자라지 않았다.
물론 어린 나무도 시간이 지나면 자란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시간’이다.
오늘 큰 나무를 베고 내일 어린 나무를 심는다고 해서 그 기능이 곧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무가 성장해 충분한 크기의 수관을 만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늘과 공기 정화 같은 도시숲의 역할을 오래되고 큰 나무가 훨씬 많이 맡고 있다는 연구도 있다.
탄소 저장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히 나무를 심으면 탄소를 흡수한다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같은 양의 탄소를 저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크고 오래 자란 나무일수록 이미 줄기와 가지, 뿌리에 상당한 양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 도시림의 탄소 저장량은 나무의 크기와 수명, 성장률 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나무를 심는 일은 미래의 탄소 흡수 능력을 만드는 것이지만, 오래된 나무를 지키는 것은 이미 축적된 탄소 저장고를 유지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몇 그루를 새로 심었는가’만으로 도시의 녹지 성과를 평가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칠 수 있다.
나무가 만드는 가치는 그늘과 탄소에서 끝나지 않는다.
큰 나무의 가지에는 새가 앉고, 껍질과 틈에는 작은 곤충들이 깃든다. 낙엽은 토양으로 돌아가고, 뿌리 주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물이 함께 살아간다.
최근 연구에서도 크고 오래된 나무는 단순한 ‘큰 식물’이 아니라 도시의 새와 곤충이 의지하는 중요한 서식공간으로 평가된다. 큰 노거수의 보전이 탄소저장과 도시 생물다양성을 함께 지키는 데 중요하다는 체계적 문헌검토 결과도 있다.
한 나무가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그만큼 주변에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시의 오래된 나무에는 생태적 가치와는 또 다른 시간이 쌓여 있다.
누군가는 그 나무 아래에서 아이를 기다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매일 출근하며 지나쳤을 것이다. 한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나무는 동네의 이정표가 되고 계절을 알려주는 풍경이 된다.
그래서 오래된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단순히 식물 한 개체를 제거하는 일이 아니다.
그 나무가 만들어온 그늘과 생태계, 풍경과 기억을 한꺼번에 없애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오래된 나무라면 어떤 경우에도 베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도시의 나무도 생명체다. 병들 수 있고, 뿌리가 약해질 수 있으며, 구조적으로 위험해질 수도 있다. 태풍이나 강풍에 쓰러질 가능성이 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면 제거가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문제는 제거가 ‘마지막 선택’이 아니라 너무 쉽게 ‘첫 번째 선택’이 되는 경우다.
개발계획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공사 동선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관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오래된 나무가 먼저 베어지고 공사가 끝난 뒤 어린 나무를 다시 심는다면 한 번쯤 질문해봐야 한다.
정말 이 나무를 살릴 방법은 없었을까.
설계 단계에서 건물의 위치를 조금 조정할 수는 없었을까. 뿌리 공간을 확보하고 보호 조치를 해서 기존 나무와 새로운 시설이 함께 존재할 방법은 없었을까.
조경에서 가장 좋은 나무는 때로 새로 심은 나무가 아니라, 이미 그 자리에 잘 자라고 있는 나무일 수 있다.
이 말은 새 나무를 심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많은 나무를 심어야 한다. 기후위기가 심해질수록 도시에는 더 많은 그늘과 녹지가 필요하다. 다만 ‘새로 심는 것’과 ‘기존 나무를 지키는 것’을 서로 대신할 수 있는 일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린 나무를 심는 일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오래된 나무를 지키는 일은 이미 우리가 가진 자산을 잃지 않는 일이다.
둘은 같은 일이 아니다.
나무를 심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나무가 살아남아 큰 나무가 되느냐는 것이다.
도시 나무 식재사업의 장기효과는 생존율과 성장, 최종 크기, 식재 위치와 관리에 크게 좌우된다. 미국 산림청의 장기 추적 연구에서도 22년 뒤 생존율과 실제 성장 정도가 처음 예상한 냉방효과를 크게 좌우했다. 또 대규모 나무심기 사업의 탄소저장과 에너지 절감 효과 역시 수종의 최종 크기와 생존율, 관리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도시 녹지를 바라보는 기준도 바뀔 필요가 있다.
몇 그루를 심었는가.
이 질문만으로는 부족하다.
몇 그루를 살렸는가.
얼마나 큰 수관을 지켜냈는가.
새로 심은 나무가 10년, 20년 뒤에도 살아남아 제대로 된 그늘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는가.
이 질문까지 함께 해야 한다.
나는 개발과 보존이 언제나 서로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도시는 변화해야 하고 필요한 시설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설계의 첫 단계에서 기존 나무를 장애물로 보는 것과 도시의 자산으로 보는 것은 결과를 크게 바꾼다.
나무를 먼저 지울 것인지, 나무를 남겨둔 상태에서 공간을 설계할 것인지의 차이다.
지난 글에서 나는 초록은 섬이 되어서는 안 되고 서로 이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 연결을 만드는 출발점은 새로운 나무를 심는 것보다 이미 우리 곁에 있는 나무를 지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나무의 가치는 숫자에만 있지 않다.
그늘의 크기에도 있고, 가지 사이에 깃든 생명에도 있으며, 그 나무가 살아온 시간에도 있다.
그래서 앞으로 도시의 녹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몇 그루를 심었는가’만 묻지 말아야 한다.
몇 그루를 살렸는가.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심고 있는 나무만큼, 이미 자라고 있는 나무를 잘 지키고 있는가.
다음 편
다음 편에서는 ‘나무를 심는 것보다 잘 자라게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나무를 심은 날부터 그늘이 되기까지는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어린 나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시간을 누가 책임지는지 다음 편에서 들여다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