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중국은 중국의 국익을 좇는다…한국에도 대한민국의 기준이 필요하다
진보는 자율성·대화공간, 보수는 동맹·억지력에 무게…다른 것은 ‘목적’인가 ‘방법’인가
상대를 이기는 정치에서 대한민국이 이기는 정치로…정책의 출처 아닌 결과를 평가할 때
(한국뉴스투데이24 = 이상록 논설위원)
우리는 정말 서로 다른 대한민국을 원하는가
「국익의 게임」 1부에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2부에서는 한국·미국·북한·중국·일본·러시아의 행동을 통해 대화와 억지가 한반도에서 어떻게 동시에 움직이는지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남았다.
우리는 무엇을 국익이라고 부를 것인가.
한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크게 갈라져 있다.
미국과 가까워지면 누군가는 동맹 강화를 말하고 누군가는 외교적 자율성 축소를 걱정한다.
중국과 대화하면 한쪽은 경제와 외교의 현실을 말하고 다른 한쪽은 중국의 전략적 압력을 우려한다.
북한과 대화하면 누군가는 평화의 가능성을 보고, 누군가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 능력을 키울 시간을 얻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일본과 안보협력을 확대하면 누군가는 북핵 대응을 위한 현실적 협력이라고 보고, 다른 누군가는 역사문제와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먼저 생각한다.
같은 나라를 보고 있다.
그런데 결론은 다르다.
진보와 보수는 정말 서로 다른 대한민국을 원하는 것일까.
다른 것은 ‘나라’가 아니라 ‘두려워하는 위험’일 수 있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차이는 실제로 존재한다.
진보적 관점에서 대표적으로 제기되는 우려에는 외교적 자율성 축소, 한반도 군사긴장 고조, 대화공간 상실, 중국과의 경제관계 악화 등이 있다.
보수적 관점에서 대표적으로 제기되는 우려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한미동맹의 신뢰 저하, 억지력 약화, 중국의 전략적 압력과 경제안보 문제가 있다.
한쪽은 관계가 지나치게 적대적으로 변했을 때 발생할 비용을 더 걱정할 수 있다.
다른 한쪽은 상대의 위협을 과소평가했을 때 발생할 비용을 더 크게 볼 수 있다.
어느 위험에 더 큰 값을 매기느냐에 따라 정책 처방은 달라진다.
그러나 위험을 다르게 평가하는 것과 대한민국의 최종목표가 다르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데이터에서도 차이와 공통점이 함께 보였다
KNT24가 이번 기획에서 확인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차이는 선명했다.
2025년 8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주변국’을 물었을 때 전체 응답자의 76%가 미국, 12%가 중국을 꼽았다.
정치성향별로는 보수층 미국 90%·중국 4%, 진보층 미국 65%·중국 22%였다.
분명한 차이다.
하지만 다른 방향에서 보면 또 하나가 보인다.
진보층에서도 미국을 가장 중요한 주변국으로 꼽은 응답이 중국보다 크게 높았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를 ‘친미 보수 대 친중 진보’라는 두 칸으로 나누는 것이 실제 국민 인식을 충분히 설명한다고 할 수 있을까.
차이는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완전히 선택하는 데 있다기보다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면서 중국과 어떤 관계를 가져갈 것인지, 그리고 어느 위험에 더 무게를 둘 것인지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대화와 억지도 목적까지 반대인가
북한 문제에서는 갈등이 더 선명하다.
진보적 관점에서는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대화공간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수적 관점에서는 검증 없는 대화와 양보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억지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한 단계 더 물어보자.
대화를 주장하는 최종목표가 전쟁을 피하는 것이라면, 억지를 주장하는 최종목표 역시 상대가 전쟁을 시작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데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접점이 존재한다.
전쟁을 막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
논쟁을 ‘대화냐 억지냐’에서 끝낼 이유는 없다.
어떤 억지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가. 그리고 어떤 대화가 군사적 충돌 위험을 실제로 낮추는가.
미국도 중국도 한국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의 현실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도 아니다.
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계산한다. 중국은 중국의 국익을 계산한다. 일본도, 러시아도, 북한도 자신들의 이해를 계산한다.
이것은 어느 나라가 선하고 악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가 기본적으로 자신의 안전과 번영, 영향력을 고려한다는 현실의 문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도 대한민국의 국익을 계산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도, 중국이 반대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도 충분한 판단기준이 될 수 없다.
누가 요구했느냐보다 그 선택이 대한민국에 무엇을 남겼느냐를 봐야 한다.
KNT24가 제안하는 ‘국익 6대 질문’

국익이라는 말은 정치권에서 너무 쉽게 사용된다.
그렇다면 외교·안보정책을 평가할 최소한의 공통 질문은 만들 수 없을까.
KNT24는 이번 3부작에서 확인한 자료를 토대로 다음 여섯 가지 질문을 제안한다.
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전쟁 위험을 낮추는가.
어떤 외교·안보정책도 국민의 생명보다 앞설 수 없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과 정책 결정권을 지키는가.
동맹과 국제협력이 필요하더라도 최종 판단의 기준은 대한민국의 이익이어야 한다.
③ 경제와 일자리, 국민생활에 도움이 되는가.
관세와 투자, 무역협정은 발표된 총액보다 실제 국내 산업과 국민에게 돌아오는 결과를 봐야 한다.
④ 미래 기술·산업경쟁력을 지키는가.
반도체·AI·조선·배터리 등은 기업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의 장기적인 협상력과 연결된다.
⑤ 에너지와 공급망 충격에 견딜 수 있는가.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외교·안보위기를 경제위기로 전환시킬 수 있다.
⑥ 다음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외교적 공간을 남기는가.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선택을 불가능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익은 한 번의 협상에서 많이 얻는 것만이 아니라 다음 협상에서도 선택할 힘을 남기는 것일 수 있다.
같은 기준을 가져도 답은 다를 수 있다
이 여섯 질문을 사용한다고 진보와 보수가 같은 정책을 지지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국방비를 얼마나 늘릴 것인지, 중국과의 경제관계에서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미국의 요구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 북한과 어떤 조건에서 대화할 것인지, 일본과 어디까지 안보협력을 할 것인지에서 답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논쟁은 필요하다.
공통 국익이 존재한다는 것이 구체적인 정책까지 같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무엇을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것인지 함께 논의할 수 있느냐다.
‘누가 했느냐’보다 ‘무엇을 남겼느냐’
국익을 진영보다 위에 놓으려면 평가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어느 정부가 추진했든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협상력을 높인 정책은 평가받아야 한다.
어느 정부가 추진했든 군사적 긴장을 실제로 낮추고 평화의 가능성을 넓힌 정책 역시 평가받아야 한다.
반대로 대한민국의 안전과 경제, 주권과 미래의 선택공간을 훼손했다면 어느 정부의 정책이든 비판받아야 한다.
정책의 출처가 아니라 결과를 평가하는 것.
그것이 국익을 진영의 언어에서 대한민국의 언어로 돌려놓는 출발점이다.
화합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화합은 무엇인가.
진보와 보수가 같은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화합일까.
그럴 필요는 없다.
화합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사실을 공유하는 것.
상대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는 이해하는 것.
그리고 상대 진영이 추진한 정책이라도 대한민국에 더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면 인정할 수 있는 것.
진보가 대화를 말한다고 안보를 포기했다고 미리 단정할 필요는 없다.
보수가 억지를 말한다고 전쟁을 원한다고 단정할 이유도 없다.
중국과 대화한다고 곧바로 친중이라고 결론 낼 필요도 없고, 미국과 협력한다고 대미 종속이라고 미리 규정할 이유도 없다.
먼저 사실을 보고 결과를 판단하면 된다.
상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본다면
정치에서 상대의 생각을 모두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물어볼 수는 있다.
“당신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진보적 관점에서는 군사적 충돌과 대화공간 상실을 더 큰 위험으로 볼 수 있다.
보수적 관점에서는 상대의 약속을 믿었다가 억지력이 약화되고 국민의 안전이 위험해지는 상황을 더 크게 우려할 수 있다.
두려움의 대상이 다르면 처방도 달라진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순간 상대는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니라 다른 위험을 먼저 보고 있는 같은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다.
동의하지 않아도 존중할 수 있는 공간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세 번의 질문, 하나의 대한민국
「국익의 게임」은 세 번 질문했다.
1부에서는 ‘미국인가 중국인가’를 물었다.
한쪽을 고르는 대신 대한민국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지를 살펴봤다.
2부에서는 ‘대화인가 억지인가’를 물었다.
하나를 버리는 대신 어떤 조건에서 두 수단이 평화를 만드는지 살펴봤다.
마지막 3부에서는 ‘진보인가 보수인가’를 물었다.
여기에서도 어느 한쪽을 없애는 것이 답일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는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 위험인식을 가진 국민들이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은 미국의 국익을 계산한다.
중국은 중국의 국익을 계산한다.
일본도, 러시아도, 북한도 자신들의 이해를 계산한다.
대한민국도 대한민국의 국익을 계산해야 한다.
그러나 그 국익은 어느 정당의 소유도, 어느 대통령의 소유도 아니다.
화합은 생각이 같아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사실을 공유하고, 상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이해하며, 대한민국에 더 좋은 결과를 만든 선택이라면 어느 진영의 정책이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정책의 답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미래까지 둘로 나뉠 필요는 없다.
5. 시리즈 완결 안내박스
KNT24 특별기획 「국익의 게임」
① 선택의 게임
미·중 사이에서 대한민국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② 평화의 게임
한반도 6개국의 실제 행동으로 대화와 억지의 관계를 추적했다.
③ 화합의 게임 — 현재 오피니언
서로 다른 정책의 답을 대한민국의 공통 국익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