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노태우 비자금 300억’, 지금도 추적·환수할 수 있나…검찰이 다시 쫓는 돈의 행방 부제

김옥숙 연희동 자택·동아시아문화재단·노태우센터 압수수색…비자금 의혹 첫 강제수사

이혼소송서 등장한 ‘김옥숙 메모’에 904억원 내역…300억원 실제 전달·범죄수익 여부가 핵심

독립몰수제 국회 통과도 새 변수…이번 사건 적용 여부는 별도 법적 판단 필요

(한국뉴스투데이24 = 이상록 기자) 이혼소송에서 다시 나온 ‘300억원’

35년 전의 돈이 다시 검찰 수사대상에 올랐다.

서울중앙지검 범죄수익환수부는 21일 노태우 전 대통령 일가의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과 조세포탈 혐의 등과 관련해 부인 김옥숙 여사가 머무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 등을 압수수색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주중한국대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아시아문화재단과 노태우센터, 과거 차명계좌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는 당시 비서관들의 자택 등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수사가 주목받는 것은 과거 비자금 사건에서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던 돈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을 통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노 관장 측은 이혼소송에서 어머니 김옥숙 여사가 작성한 이른바 ‘김옥숙 메모’를 증거로 제출했다. 메모에는 총 904억원 규모의 자금 내역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으며, 노 관장 측은 이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자금 300억원이 최종현 전 선경그룹 회장에게 전달돼 그룹 경영활동에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두 숫자는 구분해야 한다.

904억원은 메모에 기재된 것으로 알려진 전체 자금 내역이고, 300억원은 그 가운데 이혼소송에서 쟁점이 된 자금이다. 검찰이 현재 904억원 전체 또는 300억원 전부를 범죄수익으로 확정한 것은 아니다.

1995년에도 규명되지 않았던 돈

300억원 의혹은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과거 수사에서도 해당 자금의 출처가 노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규명되지 않았고, 노 전 대통령에게 부과된 추징금에도 이 300억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최근 이혼소송 과정에서 다시 자금의 존재와 성격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따라서 이번 수사의 첫 관문은 300억원이 실제 전달됐는지, 그리고 그 돈이 노 전 대통령의 범죄수익에 해당하는지를 객관적인 금융·회계자료와 관련자 진술 등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민사재판에서 이 자금과 관련한 판단이 나왔다고 해서 형사수사에서 자금 전달, 은닉행위, 현재 특정 재산의 범죄수익성까지 모두 확정된 것은 아니다.

검찰은 별도의 증거를 통해 실제 돈의 흐름과 범죄수익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검찰이 복원해야 할 ‘35년의 돈길’

더 어려운 문제는 시간이다.

의혹의 출발점은 1991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요 당사자들이 사망했고 금융실명제 시행 이전 금융거래까지 추적해야 하는 만큼 자금 흐름을 복원하는 작업 자체가 쉽지 않다.

오래된 자금인 만큼 공소시효와 범죄수익은닉 행위의 성립 시점도 핵심 법률쟁점이 될 수 있다. 검찰은 과거 자금의 존재뿐 아니라 이후 어떤 명의와 형태로 이동·보관·관리됐는지, 현재 확인되는 재산과 연결되는지도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별도로 관련자 개인의 형사책임이 성립하는지는 각자가 해당 자금의 성격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떤 행위를 했는지 등 구체적인 구성요건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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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2월 18일 비자금 사건 첫 공판에 출석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
사진출처 = 한국뉴스투데이24

이번 사건에는 새로운 법적 변수도 생겼다.

국회는 20일 이른바 ‘독립몰수제’를 도입하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법무부는 범인의 사망·국외도피·소재불명 등으로 기소가 어려운 경우에도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미 사망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독립몰수제 도입이 곧 이번 사건의 특정 재산을 환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적용 가능성은 개정법의 시행시점과 경과규정, 해당 재산의 성격, 범죄수익과의 연결관계 등 구체적인 법적 요건을 따져야 한다.

따라서 독립몰수제는 현재 단계에서 ‘환수를 가능하게 만든 해결책’이라기보다 향후 범죄수익 환수제도의 범위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변수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김옥숙 메모’는 출발점이지 결론이 아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메모 자체를 범죄의 확정적 증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메모는 과거에 알려지지 않았던 자금을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수사기관이 확인해야 할 것은 종이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실제 돈의 흐름이다.

300억원은 실제 전달됐는가.
돈의 출처는 무엇인가.
1995년 수사에서는 왜 규명되지 않았는가.
이후 어떤 명의와 형태로 이동했는가.
현재 재산과 연결되는가.

검찰 수사는 이제 강제수사 단계에 들어섰다. 현 시점에서 ‘숨겨진 비자금이 확인됐다’거나 ‘환수가 가능해졌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이르다.

결국 이번 수사의 핵심은 오래된 메모 한 장이 아니다. 1991년의 300억원이 실제 존재했다면 어디로 이동했고, 35년이 지난 지금도 그 돈의 흔적을 증거로 복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KNT24 DATA CHECK

확인된 사실: 8월 21일 검찰이 김옥숙 여사의 연희동 사저 등에 대한 강제수사에 나섰고 동아시아문화재단·노태우센터 등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옥숙 메모’에는 총 904억원 규모의 내역이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가운데 300억원이 이혼소송에서 쟁점이 됐다.

법률 변화: 독립몰수제를 도입하는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이 8월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항: 300억원의 실제 전달 경위와 범죄수익 여부, 904억원 전체의 성격, 관련자들의 범죄수익 은닉·조세포탈 혐의 성립 여부, 현재 특정 재산과 과거 자금의 연결관계, 실제 환수 가능 규모, 독립몰수제가 이번 사건의 특정 재산에 실제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