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공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가로수·선형녹지·하천까지 하나의 녹색 그물망으로
공원의 크기만큼 중요한 접근성과 연결성…매일 걷는 길에서 만나는 초록
3기 신도시 ‘숲길과 정원·파크커넥터’…생활권 곳곳을 초록으로 잇는다
(한국뉴스투데이24=한아람 논설위원) 지도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제법 푸르다.
산도 있고 공원도 있고 하천도 있다. 항공사진으로 내려다보면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에도 크고 작은 초록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한여름에 집을 나서 10분만 걸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원과 공원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는 여전히 너무 많은 아스팔트가 놓여 있다. 지도에서는 가까워 보이는 공원도 그곳까지 가는 길에 그늘 하나 없다면 어린이나 노인에게는 생각보다 먼 공간이 된다.
큰 공원 하나와 매일 걷는 길에 늘어선 나무, 둘 중 어느 것이 시민의 일상에 더 중요할까.
사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문제는 아니다.
도시에는 넓은 중앙공원도 필요하고 집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공원과 가로수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 초록들이 서로 어떻게 이어져 있느냐는 것이다.
도시 녹지의 냉각 효과를 살펴본 연구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온다.
수원시의 녹지 공간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녹지의 냉각거리가 녹지의 크기나 구성에 따라 뚜렷하게 달라지지 않은 반면, 녹지 안에서 숲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냉각강도가 커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다만 냉각강도에는 녹지의 초기 온도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녹지를 연결하면 냉각효과가 그대로 멀리 전달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녹지를 계획할 때 단순히 **‘얼마나 크게 만들 것인가’**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떤 식생으로 구성하고 어디에 배치하며 시민이 실제 이용하는 공간과 어떻게 관계를 맺게 할 것인지까지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경을 공부할 때 반복해서 배우는 기본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도 바로 이런 ‘연결’이다.
녹지를 하나의 점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산과 공원, 하천, 가로수, 작은 쌈지공원을 각각 따로 떼어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녹지체계로 바라봐야 한다.
큰 공원이 하나의 거점이 된다면 가로수와 선형녹지, 하천변의 녹지는 그 거점과 거점을 이어주는 길이 된다.
아무리 크고 잘 만든 공원이라도 주변의 녹지와 단절돼 있다면 결국 지도 위의 커다란 초록색 점 하나로 남을 수 있다.
반대로 집 앞의 작은 녹지에서 시작해 가로수길을 걷고, 그 길이 동네 공원으로 이어지고 다시 하천이나 산까지 연결된다면 각각 떨어져 있던 초록은 하나의 녹색 그물망이 된다.
나는 이런 도시가 실제 생활에서도 훨씬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공원 안에서 살지 않는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직장인은 버스나 지하철역으로 걸어간다. 장을 보러 시장에 가고 병원과 은행을 찾는다. 저녁이면 동네를 산책한다.
결국 우리가 가장 자주 만나는 자연은 유명한 대형공원이 아니라 매일 걷는 길에 있는 나무 한 그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로수와 띠녹지가 중요하다.
가로수는 단순히 도로변을 보기 좋게 만드는 장식물이 아니다. 잘 조성된 가로수길은 보행자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동시에 서로 떨어진 녹지를 이어주는 긴 연결선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가로수의 유무뿐 아니라 식재 간격과 배열에 따라서도 보행공간의 온도와 열환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결국 나무가 몇 그루 있느냐뿐 아니라 그 나무들이 어떤 간격과 방식으로 이어져 있느냐도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한 그루의 나무가 만드는 그늘도 소중하다.
그러나 나무와 나무의 수관이 이어지고 그 아래로 사람이 계속 걸을 수 있을 때 그늘은 점이 아니라 길이 된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공원에 닿고, 다시 하천이나 큰 공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3기 신도시가 보여주는 ‘연결’의 실험
최근 신도시의 녹지계획에서도 이러한 ‘연결’에 대한 관심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물론 지금도 신도시에는 중앙공원과 근린공원이 필요하다. 넓은 공원은 주민들의 휴식과 여가, 생태적 기능을 담당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중앙공원의 가치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달라지고 있는 것은 큰 공원을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고, 공원과 생활권 곳곳의 녹지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까지 함께 고민한다는 점이다.
3기 신도시가 그 사례 가운데 하나다.
LH는 3기 신도시에 공원 접근성을 높이는 선형 중심의 ‘숲길과 정원’ 100여 곳을 조성하고, 분산된 공원과 녹지를 보행길로 연결하는 **‘파크커넥터’**를 적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LH
LH에 따르면 3기 신도시에서는 도보생활권 공원을 확대해 도보 10분 이내 누구나 공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등하굣길과 출퇴근길 같은 일상적인 이동구간이 공원과 맞닿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LH
폭 30m 내외의 넓은 선형공원은 **‘큰 이음길’과 ‘작은 이음길’**을 활용해 확장·연계한다는 구상이다. LH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앙공원을 없애고 선형공원으로 대신한다는 것이 아니다.
큰 공원을 도시의 녹색 거점으로 두고, 그곳까지 이어지는 길에도 초록을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중앙공원이 도시의 ‘큰 초록’이라면 가로수길과 선형공원은 그 초록을 시민의 일상까지 끌어오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변화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공원 면적을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중요한 지표였다면 이제는 그 공원을 주민들이 얼마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지, 집에서 공원까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까지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공원 바로 옆에 사는 사람에게 공원은 일상이다.
그러나 같은 동네에 살더라도 그곳까지 자동차가 가득한 큰 도로를 건너고 그늘 없는 길을 20분씩 걸어야 한다면 그 공원은 일상의 공간이 되기 어렵다.
초록의 가치는 면적으로만 계산할 수 없는 이유다.
연결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연결은 사람에게만 중요한 것도 아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새와 곤충, 작은 생물들에게도 녹지는 먹이를 얻고 쉬어가며 이동하는 공간이다.
작은 녹지라도 서로 가까이 있고 이어져 있다면 생물이 이동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넓은 공원이 있어도 주변이 도로와 건물로 완전히 끊겨 있다면 생태적인 연결에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시의 녹지를 평가할 때 이제는 세 가지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가까운가.
그리고 서로 얼마나 잘 이어져 있는가.
지난 글에서 나는 **‘초록도 공평하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누구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무와 공원을 만나고, 누구는 한참을 걸어도 제대로 된 그늘 하나 만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이번 이야기는 그다음 질문이다.
녹지 면적을 늘리는 것만으로 그 격차를 줄일 수 있을까.
나는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은 면적의 녹지를 가진 도시라도 한곳에 몰려 있는 것과 생활권 곳곳에 촘촘하게 연결돼 있는 것은 주민이 경험하는 초록의 양과 질이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도시는 큰 공원을 새로 만들기 어렵다
특히 이미 건물과 도로가 빽빽하게 들어선 오래된 도심에서는 대규모 공원을 새로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초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 주변의 작은 공간, 도로변의 여유 공간, 공공시설 주변과 골목의 자투리땅에도 나무를 심을 수 있다.
끊어진 가로수를 보완하고 작은 공원과 공원 사이를 띠녹지로 잇고, 하천과 산책로까지 연결할 수도 있다.
각각 놓고 보면 아주 작은 공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녹지가 이어지면 길이 되고, 그 길들이 다시 연결되면 도시의 구조가 달라진다.
좋은 도시는 큰 공원 하나를 가진 도시만을 뜻하지 않는다.
집을 나서는 순간 나무를 만나고, 그늘을 따라 걸으면 작은 공원에 닿고, 다시 그 길을 따라가면 하천과 큰 공원, 산까지 연결되는 도시.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길이 초록이고, 어르신이 시장이나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나무 아래 잠시 쉴 수 있으며, 한여름에도 사람들이 그늘을 따라 동네를 걸을 수 있는 도시.
중앙공원이라는 큰 초록과 동네 곳곳의 작은 초록이 서로 이어져 시민의 하루 속으로 들어오는 도시.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다음 풍경이 아닐까.
초록은 많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초록은 이어져야 한다.
공원이 도시 안에 떠 있는 섬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일상을 연결하는 길이 되어야 한다.
다음 편
우리는 왜 오래된 나무를 베고 어린 나무를 심는가
개발 과정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나무를 없앤 뒤 그 자리에 어린 나무 여러 그루를 심고 ‘녹지를 복원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30년을 살아온 나무 한 그루와 이제 막 심은 어린 나무 여러 그루를 단순히 숫자로 비교할 수 있을까.
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온 그늘과 탄소 저장, 생물의 서식처, 그리고 그 나무에 쌓인 시간까지 새로 심은 나무의 숫자로 대신할 수 있는지 다음 편에서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