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유공자의 명예와 국민의 신뢰…역사적 존중과 국가제도의 검증은 함께 갈 수 있다

[한국뉴스투데이24=이상록 논설위원]

1980년 5월, 필자는 전남 순천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다.

광주와 멀지 않은 곳에서 그 시대를 살았다. 광주에서 생활하던 동네 형들을 통해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고, 어린 나이였지만 당시의 긴장과 충격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46년이 흘렀다.

5·18은 이제 한 세대의 기억을 넘어 대한민국이 법률과 국가제도를 통해 기억하고 예우하는 역사가 됐다.

그렇기에 필자는 오히려 묻고 싶다.

5·18을 진정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적 의미를 존중하는 것과 그 이름으로 운영되는 국가제도를 투명하게 검증하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일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5·18의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운영되는 제도는 더욱 신뢰받을 수 있어야 한다.


■ 역사적 존중과 제도 검증은 다른 문제다

대한민국은 법률을 통해 5·18 관련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민주유공자의 예우와 등록·심사절차를 제도화해왔다.

현행 5·18민주유공자법은 사망·행방불명자, 부상자, 그 밖의 희생자 가운데 법률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고 등록된 사람을 적용대상으로 규정한다. 국가보훈부장관은 신청을 받아 요건을 확인해 등록 여부를 결정하고, 관련 사실은 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해 확인하며 필요한 경우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도 거칠 수 있다.

즉 현재도 법적 등록·심사절차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한 단계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 제도는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국민이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어디까지인가.

잘못된 인정이 확인되는 경우 이를 바로잡는 절차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국가가 그 결과를 국민에게 얼마나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가.

이것은 5·18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는 질문이 아니다.

역사적 평가와 현재의 국가행정을 구분해 보자는 질문이다.


■ 존중과 ‘질문하지 않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질문을 허용한다.

물론 질문에도 책임이 따른다.

확인되지 않은 명단이나 주장을 퍼뜨리고 특정인을 근거 없이 부정수혜자로 지목하거나, 그것을 근거로 5·18 전체를 폄훼하는 것은 검증이라고 할 수 없다.

반대의 오류도 경계해야 한다.

합리적인 제도 검증까지 역사왜곡이나 폄훼와 동일시한다면 국민이 사실을 확인할 공간은 좁아진다.

존중은 질문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충분히 질문하고 검증해도 사실과 원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신뢰는 오히려 강해질 수 있다.


■ 진짜 유공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검증은 필요하다

보훈제도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사람은 실제로 희생하고 공헌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희생과 명예는 정치적 논쟁과 관계없이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정과 관리 역시 엄정해야 한다.

만약 허위 또는 부정한 방법에 의한 인정이 실제 확인되는 경우가 있다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만이 아니다.

정당하게 인정받은 유공자 전체가 근거 없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짜 유공자가 많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의심을 확대하는 일이 아니라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있는 것은 있다고 밝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확인하는 것.

그것이 검증이다.


■ 세금이 들어가는 순간 설명책임도 생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보훈대상은 다양하고 국가재정은 무한하지 않다.

따라서 보훈제도를 평가할 때 단순히 지원액이 많으냐 적으냐만 물어서는 충분하지 않다.

더 중요한 원칙은:

받아야 할 사람에게 제대로 지원하고,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지급하지 않는 것.

이다.

다만 여기에서도 정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5·18 관련 국가재정에는 개인에 대한 보상, 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지원, 관련 단체 지원, 기념·교육 등의 사업이 서로 다른 법적 근거와 목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현행법도 관련 단체의 운영과 복지사업을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일정한 국·공유재산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단순히 하나의 ‘유공자 지원금’으로 합쳐 말해서는 안 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분류와 설명이다.

어떤 돈이, 어떤 법률에 따라,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가.

그것을 알 수 있어야 재정에 대한 신뢰도 생긴다.


■ 개인정보 보호와 제도 투명성은 함께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유공자의 이름과 공적을 모두 공개해야 할까.

이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국가가 유공자로 인정했다고 해서 개인의 민감한 정보와 사생활까지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와 국가제도의 투명성 역시 같은 개념은 아니다.

국민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제도적 질문을 할 수 있다.

유공자 본인은 몇 명인가.

유형별 인원은 어떻게 되는가.

어떤 기준과 절차로 등록·심사하는가.

등록 결정 이후의 관리절차는 어떻게 운영되는가.

보상과 예우, 단체지원, 기념사업에는 각각 얼마의 재정이 사용되는가.

잘못된 인정이나 지급이 확인되는 경우 어떤 절차로 바로잡는가.

이런 비식별 통계와 제도정보를 설명하는 것은 특정인의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과 성격이 다르다.

성명과 개별 공적의 공개범위는 국민의 알 권리와 개인정보 보호, 현행 보훈제도의 공개원칙을 함께 검토해 별도로 논의하면 된다.

모두 공개하느냐, 모두 감추느냐의 양자택일일 필요는 없다.


■ 정치도 5·18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

5·18은 오랫동안 정치의 언어와 결합돼 왔다.

한쪽에서는 5·18의 가치를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 독점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제도에 대한 의문을 5·18 전체의 역사적 의미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확대하려는 유혹이 있을 수 있다.

둘 다 경계해야 한다.

5·18은 어느 정당의 소유물도 아니다.

5·18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합리적인 제도검증을 막아서도 안 된다.

반대로 제도의 문제 가능성을 이유로 역사적 의미와 실제 희생자의 명예까지 부정해서도 안 된다.

5·18을 지키겠다고 말한다면 투명한 제도검증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제도를 비판하려 한다면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사실처럼 확대할 이유도 없다.

양쪽 모두 사실 앞에서 멈출 수 있어야 한다.


■ 국민화합은 ‘믿으라’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5·18보상법은 그 목적 가운데 관련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실질적 보상뿐 아니라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을 명시하고 있다.

46년이 지난 지금 이 문구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민화합은 의문을 가진 사람에게 무조건 믿으라고 요구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근거 없는 의혹을 반복한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믿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

공개할 수 있는 것은 공개한다.

보호해야 할 개인정보는 보호한다.

잘못이 확인되면 바로잡는다.

근거 없는 의혹이라면 자료로 해소한다.

현재의 선정·심사·관리절차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설명한다.

이것이 오히려 국민화합에 가까운 길일 수 있다.


■ 다음 세대에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역사’를

1980년을 살아온 필자의 세대에게 5·18은 기억과 경험의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과 앞으로 태어날 세대에게 5·18은 대부분 기록과 교육, 법률과 국가제도를 통해 만나는 역사가 된다.

그들에게 단순히 믿으라고 말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왜 국가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평가하는지.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누구를 어떤 법적 기준으로 유공자로 인정하는지.

국가는 어떻게 보상하고 예우하는지.

제도가 잘못 작동했을 경우 어떻게 바로잡는지.

이 질문에 사실과 자료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는 질문을 금지해서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더 오래 살아남는다.


★ 질문에도 답할 수 있는 5·18이어야 한다

5·18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방식도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희생자를 기억하고 정당한 유공자를 제대로 예우하자.

동시에 국가가 운영하는 보훈제도는 국민에게 더욱 충분히 설명하자.

잘못된 인정이 실제 확인된다면 법과 절차에 따라 바로잡고, 근거 없는 의혹이라면 자료로 해소하자.

개인정보는 보호하되 국민이 알아야 할 제도의 숫자와 기준, 재정의 구조까지 불필요하게 닫아놓지는 말자.

그것은 5·18을 훼손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5·18을 끊임없는 정치적 공방에서 꺼내 국민 모두의 역사로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

진짜 유공자의 명예를 지키는 것.

국가재정을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것.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것.

다음 세대가 의심과 진영의 언어가 아니라 사실을 통해 5·18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와 인권, 국민화합이라는 가치를 오늘의 제도 속에서 구현하는 길이어야 한다.

5·18은 질문 때문에 흔들리는 역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질문에도 답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단단해지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


■ 오늘의 질문

5·18을 존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을 멈추는 것인가.

아니면 사실과 제도를 더 투명하게 설명하고 검증함으로써 진짜 유공자의 명예와 국민의 신뢰를 함께 지키는 것인가.